칠레 소방관들은 월급이 없다

[해외리포트]160년을 이어온 칠레의 자원봉사 소방시스템

15.10.21 11:02l최종 업데이트 15.10.21 11:02l
            


지난 9월, 칠레 산티아고 테마 투어를 하던 중 한 소방서에 들렀다. 뭐 특별한 것이 있는 소방서이길래 들르나 했는데 이탈리안 커뮤니티로 이루어진 소방서였다. 타국인으로 특화된 소방서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던 중 "칠레 소방관은 모두 자원봉사"라는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같이 투어에 참여한 스페인 친구에게 다시 확인을 해보니 그 말이 맞단다. 그녀 역시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믿기 힘들었다고 했다. 이탈리아인들이 모여 만든 자체 소방 조직이 가능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칠레 사람들 대부분은 정작 이 시스템이 특별히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칠레는 지진, 화산 등 자연재해가 특히나 많은 나라가 아닌가. 그럼에도 별다른 인식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시스템이 불편하지 않게 잘 운영되고 있다는 말도 되겠다.

국가의 가장 기초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소방 시스템이 어떻게 자원봉사로만 운영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지난 9일 오후, 산티아고에 있는 전국 소방조직의 중앙 본부 격인 곳을 방문해 홍보 담당인 루이스 로르카(47, 남)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 역시도 거의 20년 동안 자원봉사로 소방관 일을 하고 있다.

160년, 칠레 자원봉사 소방조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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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를 누르면 어디서나 칠레의 자원봉사 소방관들이 출동한다.
ⓒ Bomberos de Ch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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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12월 15일, 칠레 발파라이소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은 빠른 속도로 번졌고 밤새도록 당시 해군과, 시에 있던 프랑스와 영국의 소방차를 비롯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의 협동으로 불길이 잡히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날 다시 불길이 일어 장기간 화재가 이어지고 큰 피해를 냈다.

이 화재 다음날, 지역 신문에 '화재진압 예방을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고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모여 화재 예방과 진압을 위한 자체 협의체를 만드는 불씨가 되었다. 협의체의 첫 임무는 화재발생을 야기할 수 있는 도시의 화기 등을 대대적으로 청소하고, 순번을 정해 경비를 서는 것이었다.

다음 해 4월, 지역 신문에 자원봉사 소방관을 모집하는 첫 광고가 게재되었다. 1851년 6월 30일 발파라이소에서 첫 자원봉사 소방서가 공식적으로 출범하면서 칠레 자원봉사 소방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발파라이소뿐 아니라 다른 도시들에도 조직들이 생겨났다. 164년이 지난 2015년 현재 수도권에 22개 본부, 칠레 전체 312본부가 세워졌다. 본부 안에 자원봉사로 활동하는 소방관은 전국 4만5천여 명에 이르고 이중 10%가 여성 소방관이라고 한다. 루이스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칠레의 소방조직은 그 탄생부터 절대적 수평조직이다. 개별 본부들은 각각 자체적인 규율과 기능을 가진다. 이 곳 중앙본부는 전체적인 상황을 체크하고, 기본적인 지침을 만들긴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별 본부의 자체 지침에 달려 있다."

자원봉사로 일하면서 회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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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 이후부터 소방관 자원봉사가 가능하다. 미래의 소방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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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40%는 국가 보조금으로 채워지고, 나머지 60%는 각 시와 지역별로 기금 신청을 하거나 시민들의 후원금 등으로 채워진다고 한다. 예산은 주로 새로운 장비 구입과 정비, 유니폼, 교육 등의 시스템 유지비용으로 쓰일 뿐 소방관의 월급으로는 한 푼도 지출되지 않는다. 자원봉사로 활동하는 대부분의 소방관들은 다른 생업에 종사하거나 학생들이다. 단, 소방차 운전사에 대해서만 월급이 지급된다고 한다.

"가끔 길에서 시민들에게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하는데 최근 이런 모금활동은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방관들이 직접 거리에서 모금운동을 하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원봉사 소방관이 되면 각 본부마다 지정된 회비를 매월 내야 한다. 산티아고의 경우 월 8천 페소(한화 약 1만4천 원)의 회비를 낸다.

"자원봉사는 본인의 의지로 시작할 수 있지만 일단 자원봉사를 하기로 하면 그 소속된 조직의 규칙을 따르고 의무와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상징적인 회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자원봉사로 일하는데 거기다 회비까지 내야 하는 것에 의아해 하는 것에 대한 루이스씨의 답변이었다.

"소방관 일은 사명, 월급은 원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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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높은 교육과 훈련은 소방시스템 유지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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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1년 이후 164년의 역사를 가진 칠레 자치 소방시스템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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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자원봉사는 18세 이후부터 가능하다. 미리 신청을 하고 나이가 될 때까지 교육 등에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자원봉사 신청서를 작성하면 이로부터 3개월간 기초교육을 받게 되고, 이후 바로 소방관으로 활동할 수 있다. 자원봉사로 활동하는 동안 정기적으로 특별 훈련 등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렇게 칠레의 소방관들은 2014년 수도권에서 3만8천 건, 칠레 전체 11만 건 정도의 현장에 출동했다고 한다.

루이스씨는 "아마 전 국가의 소방시스템이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는 나라는 칠레가 유일할 것"이라며 "이전에는 한 가족당 꼭 한 명의 소방관이 있을 정도로 칠레 소방관은 시민의 의무이며 사명으로 인식되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사명이라 해도 안정적인 급여와 보장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옆자리에 앉아있던 앙헬(42,남)씨는 단호히 말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단지 부족함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물적, 시스템적 지원을 바란다. 소방관의 업무는 자원봉사로 계속하기를 원한다. 행정적 법규와 제도로 규정되어 소방관이 가지는 진정한 일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루이스씨는 이에 덧붙여 "칠레 정부가 현재 활동하는 소방관 4만5천 명의 월급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결국 규모가 줄어들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것이 더 나은 길일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사명감이 '희생'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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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차, 소방복 등 최대한 양질의 장비 확보를 위해 항상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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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보수를 받지 않는 소방관들의 사고에 대한 대책은 어떨지 궁금했다. 임무 수행 중 사고를 당하면 어느 병원에서나 무료로 우선 치료 대상이 되고, 불의의 사고로 사망할 경우 가족에 대한 특별 위로금이 지급되는 것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황이 이전과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대도시의 경우 점점 사람들의 생활리듬이 빨라지고 바빠지면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고, 시골의 경우는 젊은 이들이 도시로 나가서 실제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해지고 있다.

루이스씨는 "어느 시점이 오면 시스템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올 것"이라며 "시작이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졌듯이 그 답 역시 우리가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16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칠레의 소방 시스템은 확실히 특별하고, 그 나름의 역사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는 칠레 소방관들의 소명의식 또한 분명 아름답고 의미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그저 오랫동안 이어온 당연한 시스템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앙헬 씨의 말처럼 최대한의 지원을 통해, 누군가의 사명감이 단지 희생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는 제도적 개선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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