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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칼럼) 숲속 작은 음악회

(국제신문 칼럼) 숲속 작은 음악회

2010.08.31

녹음이 절정이다. 아름드리 나무의 뻗어오른 줄기를 따라 눈길을 옮긴다. 푸른 성채가 절벽처럼 까마득하다. 물기 머금은 잎사귀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져내릴 태세다. 멀리 산등성이는 짙푸르다 못해 먹빛 음영으로 깊숙하다. 산 그림자 한 자락이 어느새 피부 밑을 파고든다.

지난 금요일 오후 느지막이 금정산에 올랐다. 범어사 버스정류소에서 90번 마을버스를 타고 오르는 길, 온통 푸른 세상이 왁자지껄하다. 달포가 넘도록 들끓는 도시의 더위가 저만치 멀어진다. 해거름 한결 부드러워진 숲은 서늘하고 평온하다. 상마마을의 발치, 철화원 아담한 풀밭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기후변화대안에너지센터가 연 '가을을 부르는 여름의 노래, 숲속 풀벌레 음악회'다.

폭신한 잔디 위에 앉자 풀냄새가 온몸을 휩싸고 돈다. 눈을 감고 마음을 모은다. 한순간 귓전으로 매미 소리가 쏟아져 들어온다. 아우성치는 녹음에 눈길을 빼앗겨 미처 깨닫지 못했던 모양이다. 온갖 소리들이 쏴아~, 청각세포들을 곧추세우며 파도처럼 밀려온다. 요란스러운 매미 소리 틈새로 쓰르라미 소리도 들린다. 녹음에 물든 몸을 파고드는 자연의 소리들, 마음이 편안해진다.

약간은 거친 듯한 해금 소리가 풀밭으로 쏟아진다. 경쾌한 가락은 저무는 빛살 속으로 튀어 오르고, 습습한 기운이 밴 묵직한 가락은 마음밭을 헤집는다. 소리결이 지나간 마음자리가 텅 빈다. 빈 마음으로 불어오는 바람자락이 깊숙히 공명한다. 어느새 주위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멀리 산색은 더욱 짙어진 먹빛으로 수묵화 한 자락을 친다. 매미들의 합창이 잦아든 자리엔 풀벌레 소리가 다소곳이 자리 잡는다. 가슴으로 자연의 소리와 냄새, 빛깔이 스며들면서 일상의 그림자가 쫓기듯 빠져나간다. 온몸 가득 숲의 기운이 차오르고 정신은 서늘해진다.

날마다 열대야였다. 이 도시에서 20년 넘게 살아왔지만 이번 여름 같은 더위는 처음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침부터 온몸이 땀에 젖은 채 후줄근하다. 가로등이 도시를 밝히는 밤까지 축축한 열기가 짜증을 부추긴다. 머리는 무겁고 팔다리는 흐느적거린다. 어디 바깥 나들이라도 할 양이면 숨이 턱턱 가슴에 찬다. 도시가 거대한 한증막이다.

사실 도시의 더위는 악순환이다. 사람들은 더위를 쫓기 위해 냉방기를 돌린다. 하지만 이 문명의 기계가 내뿜는 열기는 고스란히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냉방기는 도심의 대기를 데우고, 뜨거워진 대기는 기계를 더욱 혹사시킨다. 차량과 실내에서 토해내는 열기가 골목을 휘젓고 다닌다. 한계에 이른 냉방기가 가래 끓듯 그르렁거린다. 시원해지기 위해 더욱 더워져야 하는, 악순환일 뿐이다.

우리들 삶 또한 욕망의 악순환 속에서 바동거린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은 우리의 삶터를 헤집고 망가뜨린다. 물질적 풍요를 구하기 위해 더욱 많이 생산하고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자연은 약탈당하고 사람은 착취로 내몰린다. 그 와중에 우리의 삶은 평온과 안식을 잃는다. 자연과 공생하는 지혜도 이웃과 공존하는 방법도 잊어버린 지 오래다. 모든 것이 욕망의 코드에 맞춰져 있다.

성장에 대한 강박감, 경제성장에 대한 맹신이 우리 삶을 뒷걸음질치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인간이 행복해질 수 없다는 뒤틀린 가치가 삶을 옭아매고 있다. 무한욕망을 부추기는 자본과 시장의 어리석은 논리에 우리의 일상은 길들여진다. 사람들은 성장에 대해 조급증을 내보지만 그것은 세상의 그늘을 더욱 깊게 하고, 한 줌밖에 남지 않은 정의마저 사라지게 한다.

그날 저녁 풀밭 위에서 만난 절정의 녹음과 풀벌레 소리, 아낌없이 주는 숲은 사람의 가슴을 열게 했다. 더할수록 부족해지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욕망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자화상을 생명의 인드라망으로 비춰 주었다. 지금 인간들에게 중요한 것은 덧셈보다 뺄셈이야, 라며 속삭였다. 비만해진 육체를 위해서 필사적으로 다이어트에 매달리면서도 정작 욕망의 무게를 줄이지 못하는 인간에게 마음을 비우는 일이 행복해지는 길임을 깨우쳐 준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뿌연 달이 도심의 허공에 걸려 있었다. 똬리를 튼 더위는 발끝에 채이고. 
논설실장 byja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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