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 불가능해 보인 일을 가능한 일로 바꾸다


후쿠시마 핵발전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탈핵을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을까? 일반시민들은 핵발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2015년 3월에 실시한 원자력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무려 89.9%의 응답자들이 여전히 핵발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응답자의 39.1%만이 핵발전이 안전하다고 답했으며 방사성 폐기물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응답은 24.0%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핵발전이 안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명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핵발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 즉 필요악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핵발전의 대안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이러한 대안을 신뢰하지 않을 때, 핵발전의 대안이 경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 이런 응답결과가 나올 수 있다. 과연 우리에게 대안이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은 어렵지만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시는 2012년 4월, “원전 하나 줄이기”라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였다. 중앙정부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 참사 이후에도 핵발전 확대 계획을 접을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던 때에, 아니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일본의 사고가 우리에겐 세계 핵발전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며 핵발전이 녹색에너지인양 여전히 홍보하며 확대를 주장하고 있었을 때, 바로 수도 서울에서 핵발전소를 하나씩 줄여가자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는 담고 있는 내용과 가치에서 주목할만할 뿐 아니라 이제껏 중앙정부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온 에너지 분야에 지방정부도 개입할 여지가 상당히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2012년에 시작된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의 목표는 2014년 말까지 원전 한 기가 생산하는 에너지량, 약 200만 TOE(Ton of Oil Equivalent, 석유환산톤)를 에너지 절약과 효율 개선, 신・재생에너지로 줄이거나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 목표는 목표기간을 6개월이나 앞당긴 2014년 6월에 달성되었다. 그리고 2014년 8월부터 다시 원전 하나 줄이기 2단계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2020년까지 원전 2기가 생산하는 약 400만 TOE 감축과 전력자립도 20% 달성, 이산화탄소 1000만 톤 감축을 목표로 내걸었다. 서울시가 최근에 발간한 2014년 에너지백서에 따르면 서울시의 에너지 소비량은 원전 하나 줄이기를 시작하기 직전 해인 2011년 이래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그 결과 온실가스 배출량 또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에서 2014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서울의 전력 소비는 4.0% 감소하였으며 도시가스 사용량은 13.5% 감소하였다. 같은 기간 전국의 전력 소비가 4.9% 늘어난 것과 견줘 보면 서울의 전력 소비 감소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전체 전력 소비 증가율도 다소 둔화되어 2014년에는 2013년에 비해 0.5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서울시의 경우에는 증가율이 둔화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전년 대비 2014년 전력 소비가 3.3% 감소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바로 원전 하나 줄이기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중앙정부는 우리나라의 전력 수요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4년 1월에 발표된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13~2035년)에서는 2035년까지 전력 소비가 연평균 2.5%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많은 발전시설을 건설해야 하는데 기후변화를 고려할 때 핵발전 비중을 늘려야 한다며 발전설비 중 핵발전 비중을 29%까지 늘리기로 하였다. 지난 7월에 확정 공고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년)에서는 2029년까지 전력 수요가 연평균 2.1%씩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하고 현재 건설 중인 원전 4기와 건설 준비 중인 6기 외에 추가적으로 원전 2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담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의 전력 수요 증가율은 2013년에는 1.8%, 2014년에는 0.6% 증가에 그쳐 조금씩 둔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흐름에 바로 서울시가 있고 원전 하나 줄이기가 의미 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전력 수요가 줄어드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또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간주되어 왔다. 전력 소비 감소는 경제의 퇴조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그런 생각이 신화에 불과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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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 홈페이지 ⓒ서울시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의 추진 배경과 지향하는 가치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는 여러 사건을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다. 먼저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 참사가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서울시에는 핵발전소가 없다. 하지만 핵발전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지 핵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1년 당시 서울시의 전력 소비량은 4만6903GWh로 전국 전력 소비량 45만5070GWh의 10.3%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직접 생산하는 발전량은 1384GWh로 소비량의 2.95%에 불과했다. 서울시의 전력 소비가 늘어나면 더 많은 핵발전소를 설치하는 이유가 될 수 있고 이는 그만큼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된다. 게다가 핵발전소는 세계 어느 국가도 해결하지 못한 사용후 핵연료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안전한 관리가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이는 미래세대에게 더 많은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바로 이런 각성이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과 운동이 출범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21세기 최대 환경문제인 기후변화 또한 원전 하나 줄이기의 중요한 핵심 배경이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의 연소가 늘어나는 것이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이다. 이는 고탄소 배출원인 석탄화력발전소를 위험한 핵발전소로 대체함으로써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전력을 비롯한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면서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을 늘려가는 데서 답을 찾아야 할 문제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은 핵발전 늘리기가 아니라 핵발전 줄이기와 함께 가야 한다. 이것이 원전 하나 줄이기의 정책 지향이다.


2011년 9월 15일에 있었던 대규모 순환정전도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이 심각하게 낮은 것은 서울시 자체의 에너지 안보에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전력 자립도가 3%가 되지 않는 것은 예기치 않은 정전상황에서 서울시의 다양한 기능이 마비될 수 있는 심각한 결함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2012년 1월 이치우 씨 분신사건으로 전 사회적으로 알려진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도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의 추진 배경이 되었다. 서울시의 낮은 전력 자립도는 그만큼 서울시가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발전과 송전에 따른 위험과 비용을 전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제가 야기하는 환경불의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가 밀양 송전탑 투쟁을 계기로 표면에 드러나게 되었다.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는 전력을 비롯한 에너지 이용이 야기하는 환경불의를 인식하고 이를 시정하려는 의지를 담은 새로운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은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서울에서 에너지 절약과 태양광 등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발생량을 줄여 미래세대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서울을 물려주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시는 에너지 자립도를 높임으로써 정전으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만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에너지 공급을 둘러싼 환경불의를 바로잡아 나가겠다는 다짐을 담아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원전 하나 줄이기를 통해 서울시는 1단계에서는 “에너지 자립도시”를 내걸었다. 2014년 8월부터 시작한 2단계에서는 “에너지 살림도시 서울”을 비전으로 하여, “에너지 자립, 에너지 나눔, 에너지 참여”를 핵심적인 가치로 내걸고, “분산형 에너지 생산도시, 효율적 저소비 사회구조, 혁신으로 좋은 에너지 일자리, 따뜻한 에너지 나눔공동체”를 정책 목표로 한다. 2단계에서는 2020년까지 달성해야 할 핵심지표로는 앞서 기술한대로 총에너지 생산과 절감량 400만 TOE, 전력 자립률 20%, 온실가스 1000만 톤(tCO2eq) 감축(2011년 대비 20.5% 감축)을 내걸었다.


필자는 올해 1월에 대만에서 반핵운동의 중심단체인 녹색공민행동연맹의 초청을 받아 대만을 방문해서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에 대해 시민 대상 공개 강연과 전문가 대상 워크샵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 때 필자의 강의를 들은 대만 시민들로부터 서울의 원전 하나 줄이기가 일정한 비전과 가치, 목표, 성과지표를 설정하고 이러한 큰 기획 속에서 개별 사업을 꼼꼼하게 배치한 것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란 의견을 들었다. 에너지 자립도시, 에너지 살림도시라는 비전을 세우고 에너지 자립과 에너지 나눔, 에너지 참여라는 가치를 지향한다는 대원칙을 세운 후 이러한 큰 원칙 속에서 사업들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모습은 무언가 여러 사업들을 하고 있지만 그 사업들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대만과 크게 다른 점이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이렇듯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는 그 정책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왜 그러한 지향이 가치가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사회적 이해와 동의를 획득하여 정책과 사업을 추진할 때 시민적 관심과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짐으로써 정책과 사업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는 적절하게 기획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원전 하나 줄이기 방법과 과정, 시민참여


아울러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지점은 원전 하나 줄이기란 정책을 추진해 온 방법과 과정에 있다. 바로 시민참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특별하다. “시민이 에너지입니다.”란 구호가 시사하듯 원전 하나 줄이기란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코마일리지와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 아파트 미니태양광 설치, 다양한 정책토론회와 포럼 등을 통한 참여이며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출자도 중요한 참여 통로가 되고 있다. 비단 일반 시민들만이 아니다. 대학들은 서울그린캠퍼스협의회를 만들고 서울시와 MOU를 맺었으며 15개 기업들은 에너지 소비절감을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 발생하는 비용 절감분을 취약계층을 위한 에너지 서비스 제공에 기여하는 에너지를 나누는 이로운 기업단을 구성해서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사회의 참여 폭을 넓히고 시민사회로부터의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해 원전 하나 줄이기를 출범시키기 전에 시민사회와 기업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시민위원회와 실행위원회를 구성한 후 이 위원회들과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원전 하나 줄이기의 윤곽을 잡아나갔으며 시민워크숍을 통해 시민들로부터 직접 의견을 수렴하였다. 또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책토론회와 소셜픽션포럼 등을 개최하여 서울시의 정책을 알림과 함께 시민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였다. 서울시는 이렇듯 처음부터 시민참여를 통해 원전 하나 줄이기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