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놀라운 독일 농촌의 '비밀' (2015

조회 수 1686 추천 수 0 2016.01.06 00:01:49
  • 행복사회 유럽
  • 선진국 독일 농민들도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지 못한다. 농가당 연평균 농업소득이 2천만 원 밖에 안 된다. 그중 50% 이상은 세금으로 나간다. 한국 농민의 수준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러나 한국 농민들과 독일 농민들의 생활은 차원이 다르다.

    독일 농민들은 농촌을,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기본생계를 국가에서, 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있다. 어찌보면 기본소득제나 마찬가지인 직불금 정책으로 농업 소득만큼 부족한 생활비를 보전해준다. 농민들은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그런 국가와 정부를 믿고 농촌을 잘 지키고 산다.

    무엇보다 독일에는 농부들 스스로 욕심을 조절하고 규제할 수 있도록 법과 정책이 마련돼 있다. 1954년에 만들어져 60년 넘게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녹색계획(Green Plan)이다. 도시보다 농촌이,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독일의 농업정책은 바로 이 4가지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철칙과 같다.

    첫째, 농민도 일반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며 국가 발전에 동참한다. 경쟁력 향상, 소득 증대만 추구하면 대다수 소농들의 토대는 무너지고 이농을 할 수밖에 없다.

    둘째, 국민에게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농산물을 과대포장해 비싸게 파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다.

    셋째, 국제 농업과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자국의 먹을거리 문제 해결은 물론,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않는다.

    넷째,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 농촌의 자연, 문화 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한줄 한줄이 다 금과옥조같다. 그래서 농민들은 농사를 크게 짓거나 돈을 많이 벌려고 무리를 하지 않는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 지금 2% 밖에 안 남은 독일 농민들은 독일 국민의 60%가 사는 농촌을 사람이 살 만한 생활공간으로 보전하고 보호하는 일에 오직 집중하면 된다. 자기의 자리만 그대로 잘 지키고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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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인스바일러 마을 한복판에서 1581년부터 샘 솟고 있는 마을의 공공재 샘물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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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농정의 목표는 '사람 사는 농촌'

    이렇게 독일의 농정이 궁극의 목표로 삼는 지상과제는 그저 '사람 사는 농촌'이다. '돈 버는, 또는 돈 되는 농산업'이 아니다. 농민도 사람 꼴을 하고,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생활농촌을 지향한다. 그 소박하지만 소중한 '농(農)'의 철학과 가치를 공평하고 공정하게 실천하는 데 독일 농정당국은 매진하고 있다.

    물론 첨단기술농업이니 농식품가공이니 수출농업이니 '돈도 되는' 농업전략과 정책이 없는 게 아니다. 그건 자본력과 조직력이 뛰어난 일부 기업농이 할 일이다. 대다수 중소농이 함부로 덤벼들 영역이 아니다.

    평균적인 농민들은 이기적으로, 경쟁적으로, 독과점적으로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 없게', '생활에 필요한 돈 이상은 못 벌게', 유기농업이나 지역농업에 충실하게 법이나 조합의 정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공동체, 농업 협업경영체(Gemeinscaft) 동지들 사이의 약속으로 서로가 서로를 엄중하게 단속하고 규제하고 있다.

    독일 농촌에는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농촌에 최소한 유지되어야 하는 인구밀도'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굳이 떠날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정부의 공무원들은 애를 쓰고 있다. 농민들이 살고 있는 농촌의 전통과 경관을 지키려고 들판의, 나무 한그루도 함부로 베지 않는다. 농업소득 보다 많은 소득보전 직불금도 다 그런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정책의 성과물이다.

    그런 독일 농정의 현장에서 나는 계속 감동하고 감탄했다. 농민의 삶을 돌보고 지키려 애 쓰는 이 국가의 도덕성이, 이 정부의 책임감이, 이 국민들이 품고 있는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와 양식'이 놀라웠다. 결국 신뢰, 협동, 연대 같은 철두철미한 사회적 자본의 힘이 부럽고 샘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의심과 의혹이 크게 들었다. 지난날 독일 등 유럽의 선진 농정을 배우고 돌아와 오늘날 대한민국 농정당국의 요직을 꿰차고 있는 수많은 학자, 공무원, 전문가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 대체 무엇을 했나.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도대체 독일 같은 농정 선진국의 농업, 농촌 현장에서 그들은 뭘 보고 느끼고 돌아온 건가.

    설마 독일에 가서 농업을 자본에게 헌납하는 농업의 기업화개론과 공업화총론만 공부한 것인가. 삶의 터전인 농촌 마을을 한낱 유원지 같은 구경거리로 만드는 관광지화 경영론, 공원화 개발론만 실습하고 온 건가. 그게 아니라면 대체 우리 농업이, 우리 농촌이, 우리 농민의 삶이 도대체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말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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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백년이 넘은 중세의 골목길과 농가주택이 잘 보존된 라인스바일러 마을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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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 하나로 일군 농촌생활공동체, 라인스바일러(Leinsweiler)

    지난해 5월, 조국의 농정과 농정책임자들에 대한 평소의 의심과 불신을 가득 품고 라인스바일러(Leinsweiler) 마을에 들어섰다. 독일 중서부 라인란트 팔츠(Rheinland Pfalz) 주를 대표하는 명품 수제 포도와인의 명산지다. 1935년에 개통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주가도(Weinstraße)'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수백년이 넘은 중세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풍광이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그 평화로운 농촌마을 어귀에 서서 나는 부러움과 안타까움, 희망과 절망, 그리고 한국 농정 책임자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교차하는 복잡미묘한 정신상태에 빠졌다.

    와인으로 유명한 라인스바일러 마을은 전체 180가구 가운데 와인농가는 16가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와인농가가 소득을 독점하지 않는다. 와인농가끼리만 잘 먹고 잘 살지 앉는다. 와이너리를 소유하지 않은 나머지 가구도 와인시음장, 전통식당, 농가민박시설 등을 운영해 독일 평균농가 소득 이상의 농외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포도 하나로 모두 함께 먹고 사는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중 30여 가구에서 운영하는 농가민박은 우리 농촌휴양체험마을의 그렇고 그런, 틀에 박힌 농박 수준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개인적으로는 독일 도시에서 묵었던 그 어느 호텔들보다 더 쾌적하고 편안했다. 그곳에서 먹고 자는 동안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유년에 시골 외가에서 느꼈던 그런 만족감과 행복감까지 들 정도였다.

    특히 내가 묵었던 퇴페라이(Toepferei) 농박은 그림도 그리고 도자기도 굽는 예술가가 아틀리에를 겸한 곳이었다. 가족 단위의 장기 휴양객이 주 고객이라고 한다. 우리처럼 소주에 삽겹살이나 실컷 구워먹으려고 작정하고 오는 일회적 유흥 관광객은 없다. 일상에 지친 도시민들이 휴양과 치유를 목적으로 농촌을 찾아오는 체류형 고객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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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자기 공예가가 운영하는 문화예술형 농박 퇴페라이(Toepferei)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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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스바일러 마을은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포도로 농민들이 직접 만든 수제 포도주로 유명하다. 10ha가 넘는 포도밭을 경작하는 피터 스튜빙어(Peter Stu¨binger)씨 같이 '포도주 마이스터'들이 대를 이어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와이너리마다 독특한 풍미의 와인을 경쟁하듯 만들고 있다. 중세 이래로 농가마다 대대로 이어온 고유 제조법 대로 만들어 맛과 향이 다 다르다.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10여 농가의 와인은 서로 다른 상표로 출하된다. 하지만 품질은 다르지 않다. 주민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조합에서 와인의 품질을 철저히 공동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품질과 상품성이 좋은 라인스바일러산 와인은 이제 독일 전역으로 판매되는 것은 물론 외국에 수출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만일 한국에서 사려면 몇 배는 더 지불해야할 것이라는 스튜빙어씨의 엄포에 연수단원들은 와인 몇 병씩을 다투듯 배낭에 챙겨넣기에 바빴다.

    이처럼 와인테마 농촌관광으로 활성화된 라인스바일러 마을 안에는 관광청의 공무원이 아예 상주하고 있다. 포도주 가도(Weinstraße)를 따라 이어진 14곳의 포도주 마을연합체의 가운데 라인스바일러 마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공무원 다니엘라 되닉(Daniela Doenig)씨는 '상생'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14개 마을의 농촌관광 농가들이 일정 금액을 내면 관광책자에도 실어주고 홍보를 관광청에서 대신 해줍니다. 해마다 연합체의 14개 마을이 돌아가면서 와인축제도 하고 있고요. 3년에 한 번 씩은 농가민박마다 평가를 해서 인증서도 부여하고요. 농가민박 대문마다 인증패가 붙어있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요즘 들어 포도주 농가 경영주들이 노령화되면서 농사는 못 짓고 민박만 하는 경우도 많아요."

    마을 한복판 네거리, 마을의 가장 중요한 공공재 마을샘물에는 1581이라는 숫자가 새겨져있다. 1581년부터 샘물이 계속 솟고 있었다는 뜻이리라. 라인란트팔츠 지방에서 유일하게 중세 시대 건물과 거리가 남아있는 설촌 역사 800년의 마을답다. 이토록 오래된 마을의 농촌관광사업 주제는 자연스레 중세 독일의 전통과 문화를 살리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전통 와인과 전통 음식이 풍기는 중세와 현대의 역사적 조화를 체험하러 찾아오는 관광객은 연간 10만여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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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인스바일러 마을에 상주하는 관광청 홍보담당자 다이엘라 되뇍씨와 황석중박사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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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조금씩 농부인 '농부의 나라' 

    "독일에 유기농(Bio)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죠.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유기농업이 더욱 빠르게 확산됐어요. 독일 국민들은 가격이 비싸지만 직접 농가를 찾아가 유기농산물을 구입해 먹었어요. 그러면서 자연과 환경을 생각했죠. 또 독일 등 유럽의 공무원들은 '농업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기본 이념이 투철해요.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농민들이 얼마나 잘 친환경적으로 생산해 내는지 늘 감시하는 역할도 맡고 있어요. 매년 5%씩 무작위로 토양검정을 실시해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 농민이 있다면 형사처벌을 하고 그동안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돈은 모두 환수할 정도로 엄격합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초지사료과장을 지냈던 연수지도교수 황석중박사는 독일은 먹을거리로 장난을 칠 수 없는 사회라고 강조한다. 독일 농정의 성공이 생산자인 농민 뿐 아니라 소비자인 독일 국민의 의식과 실천에 크게 힘 입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인 도시민과 상생하는 협동과 연대의 전략이 없이는 농민 혼자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에는 라인스바일러 마을이 놓인 포도주가도처럼 80여 개가 넘는 관광가도가 있어요. 관광가도가 스치는 작은 농촌마을 안에도 수백 년이 넘은 중세의 건축물과 거리가 보존되어 있어요. 대부분의 농촌마을이 '동화 속 풍경 같다'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푸른 숲과 초지, 자연과 전통을 지키려는 생태적 마을가꾸기의 결과입니다. 심지어 지붕의 각도, 벽의 색깔 등 모든 것을 나라에서 법으로 정해 놨어요. 독일의 오랜 전통, 아름다운 문화경관을 볼 수 있도록 농가주택 외부는 마음대로 고칠 수도 없어요."

    한 번 더 되풀이 한다. 아니 열 번, 백 번도 더 되뇌이고 싶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굶고 깊게 문신처럼 새기려고 한다. 60년 전 독일이 정해놓고 변함없이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4가지 농업정책(그린플랜)을.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만큼만, 모두가 조금씩 농부인 '농부의 나라' 독일이 하는 것 만큼만 우리도 하자.

    하나, 농민도 일반국민과 동등한 삶의 질을 누리게 하자. 둘, 농민들은 농산물과 농식품을 적정한 값에 국민들에게 팔고, 국민들은 농민이 수고한 만큼 보상을 하고 구입해주자. 그렇게 농민들은 국민들의 생명을 위하고, 국민들은 농민들의 생활을 보살피자.

    셋, 먹을거리를 무기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말자. 아니면 다른 나라도 우리의 숨통을 조이려 들 것이다. 넷, 착한 농업, 정의로운 농업으로 조상에게 물려받고 후손에게 빌려쓰고 있는 우리 자연과 문화와 경관을 지켜내자, 더도 덜도 말고, ICT융복합농업이나 스마트농업을 하기 전에 우선 이 정도만이라도 먼저 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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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인스바일러 마을 180농가, 400여 주민을 먹여살리는 포도밭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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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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