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계량기를 천천히 돌게 해 보자. 비싼 한전 전기료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에너지 텃밭운동이 싹트고 있다. 스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초소형 태양광 발전기가 있어 가능하다.
아파트 발코니 난간이나 옥상의 넓은 공간, 햇빛이 잘 드는 자투리 공간의 어디라도 설치하고 쉽게 옮길 수 있다. 초소형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면 햇빛으로 자기가 쓰는 전기를 직접 생산하는 '햇빛 농부'가 되는 것이다. 160W형 초소형 태양광 발전기 하나면
대형 냉장고 한 개의 소비전력을 감당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한다. 이처럼 무한한
청정에너지 태양광을 이용한 발전은 우리 일상 생활에 성큼 다가와 있다. 스마트폰 충전은 물론 오지 캠핑에서는 '콘센트' 역할도 한다. 다양한 태양광 발전 제품들도 애용해 보자.
친환경 에너지를 쓰면 아픈 지구에게 조금 덜 미안하니까.
■ 발코니에 놓인 작은 발전소김우주(21) 군은 작은 발전소를 하나 가지고 있다. 이 말을 들은 친구들은 '뻥'이라고 놀렸다. 큰 평수도 아니고, 그것도 아파트 9층에 사는 걸 뻔히 아는데 못 믿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 군은 점입가경이다. 발전소를 아버지가 선물했다고 했다. 진실과 거짓 사이를 오가던 친구들과의 대화는 우주 군의 진실로 판가름 났다. 우주 군의 아버지인 양산대 냉동공조설비과 김철수 겸임교수가 선물한 초소형 태양광 발전기가 버젓이 발코니에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160W 초소형 발전기 하나면
대형 냉장고 가동 거뜬
텐트·모자·키보드 상품화
'자동 충전 자전거'도 나와
시민햇빛발전소 3호기
연 3천800만 원 수익, 주주 배당"휴대폰 충전도 하고 전구도 켜요. 노트북도 거뜬히 사용해요." 작은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50W. 기존 백열전구 60W면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하지만 요즘은 전구가 많이 발달해 7W짜리 발광 다이오드(LED) 전구 하나만 켜도 온 거실이 환하다. 취재를 한 날도 날씨가 잔뜩 흐렸는데 전구 하나를 켰더니 가까이에서는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밝았다.
이 소형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계산상으로 같은 용량의 전구 8개를 켤 수 있는 전력량이다. 전등에만 사용한다면 아파트 거실과 방의 전구를 모두 다 감당하고도 남는다.
김 교수는 강의 교재로 썼던 태양광 발전 설비를 묵혀 두느니 집에서 비상전력으로 사용하자는 생각에 아들에게 줬다. 초소형 태양광 발전기는 의외로 간단해 가로 세로 1m 정도 크기의
태양광 집광판과 축전지, 직류를 교류로 바꾸는 인버터로만 구성된다. 인버터를 통해 나온 전기는 220V이기 때문에 어떤 가전 제품에 써도 무방하다.
작은 햇빛발전소를 운영하는 우주 군은 "태양 에너지는 깨끗하고 공해가 발생하지 않잖아요. 자연에서 구한 에너지라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선물로 햇빛 에너지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된 김 군의 집에는 몇 년째 대를 이어 어항에서 살아가는 열대어 가족이 있다. 이 열대어들은 전력 비상 시국에도 아무 걱정이 없다. 태양이 선물한 햇빛 발전소가 떡하니 발코니에 존재하고 있기에 그렇다.
■ 태양에 다가서는 사람들캠핑족 장성환(47·김해시 장유면) 씨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눈에 번쩍 띄는 상품을 발견했다. 태양광 발전 텐트였다. 평소 캠핑장에서는 전기를 유료로 끌어 쓰거나 집에서 충전해 간 전등을 사용했다. 한번은 충전이 다 된 줄 알고 전등을 켰다가 용량이 부족한 배터리 때문에 전구는커녕 휴대폰 배터리도 충전 상태가 간당간당해 2박3일을 노심초사한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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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에 감기는 휴대용 태양광 충전기(왼쪽)와 태양광 모자. |
장 씨가 본 상품은 위드인터페이스(www.withint.com)가 내놓은 태양광텐트. 이 회사는 초박막 고효율 충전기 제품을 개발했다. 특별한 것은 '플렉시블'(flexible) 기능. 기존 태양광 모듈과 달리 자유롭게 휘거나 구부러지기 때문에 텐트 장착이 가능한 태양광 발전 시스템이다.
시간당 7W를 발전하는 이 솔라(solar) 제품은 스마트폰의 경우 2.5회 충전이 가능하다. 동그랗게 말 수도, 펼칠 수도 있기 때문에 백팩에 부착해 랜턴,
미니선풍기의 전원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포장마차에 태양광 발전이 도입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10년 전 태양광 포장마차(트럭)를 시범 생산했던 솔레이텍(www.soleitec.com) 이만근(60) 대표는 "현재의 기술로 대량 전열기구를 사용할 수는 없지만 포장마차에 필요한 모든 전원을
태양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부 전통시장의 상인들도 전등 한두 개를 켜는 정도의 태양광 설비를 사용하고 있다.
가로등과 공원등의 태양광 설비도 이미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태양광 가로등을 제작 설치하는 에코파워(www.ecopower.kr) 측은 60만~165만 원이면 공원용 옥외등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가로등은 일정 룩스 이상의 밝기가 보장돼야 하기 때문에 기존 전기와 연결(계통연계)을 해 놓아야 하지만, 공원등은 태양광 단독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울산대 교정에서는 희한한
전기자전거 한 대가 종횡무진 달린다. 전기공학부 4학년 학생들이 만든 '태양광 자전거'다. 통합설계 과정 과목을 듣는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200만 원을 들여 직접 만들었다. 전기공학부 김현철 교수는 "기본적으로 태양광으로 충전을 한 다음 전기모터를 돌려서 가는 원리다. 집에서 충전해야 하는 일반
전기 자전거와 달리 캠퍼스에 세워놓기만 해도 충전된다"며 실용 측면에서도 훌륭해 향후 관광용이나 레저용으로 실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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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 전기공학부 학생들이 직접 만든 태양광 전기 자전거를 타고 있다. 울산대 김현철 교수 제공 |
스마트폰 충전용
보조배터리 한 면에 집광판을 설치한 세이프에버의 솔라 충전기는 비상용 배터리로 인기다. 태양광 집광판을 모자에 단 태양광 모자는 물론 솔라 골프카나 솔라 요트, 태양광 충전 키보드 등 수많은 상품이 실용화돼 있다. 심지어는 등산복이나 여성들의
비키니 수영복에도 태양광 집광판을 단 제품이 나왔다. 태양이 부쩍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 햇빛 발전으로 돈을 벌다
기후변화에너지 대안센터는 시민햇빛발전소 3기를 상업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민주공원에 시민햇빛발전소를 처음 설치했고 이후 부산환경공단 옥상에 수영시민햇빛발전소와 온천천시민햇빛발전소를 세웠다. 설비 용량 50㎾의 3호기는 연간 3천800만 원의 수입을 올린다. 이에 참여한 주주들에게는 지난해 수익 배당을 했다.
기후변화에너지 대안센터 노승조 사무처장은 "햇빛 발전은 시민들이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에너지 주권을 가진다는 의미"라며 "자기가 쓰는 전기를 스스로 생산한다는 점에서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시민햇빛발전 추진위원회 구자상 위원장은 "올해 추진되는 햇빛 발전 4호기는 부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가칭) 형태로 준비하는 것을 적극 검토 중"이라며 "논의를 거쳐 초소형 태양광 발전기 보급 사업도 전개할 예정이어서 시민들이 에너지의 주체로 서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보통 가정에서 쓰는 태양광 발전은 3㎾급 대형으로 설치비가 900만 원 정도 든다. 물론 경사
지붕도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160W급 초소형 발전기는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 크기는 작아도 한 달 20㎾h 정도의 전기가 생산되는데 이 정도면 대형 냉장고 하나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양이다.
초소형 발전기를 생산 판매하는 기업인 마이크로발전소(031-943-5500)는 160W/200W/250W 타입 세 가지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60만 원 내외다. 초소형 태양광 발전기는
텔레비전을 설치하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고, 이동 또한 용이하기 때문에 간단한 투자로 '친환경 우리 집'을 만들 수 있다.
기후변화에너지 대안센터 노승조 사무처장은 "에너지 대안 정책은 절약과, 절전기구로 전환하는 효율, 신재생 에너지의 보급 확대로 요약되는데 초소형 태양광 발전기는 시민들에게 본인이 전기를 생산하는 기쁨을 준다"고 밝혔다.
부산환경연합 손지은 활동가는 "초소형 태양광 발전기는 핵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전기를 소비만 하는 도시에서 생산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무척 보람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태양은 오늘도, 내일도 늘 우리를 비춘다. 태양에 아무리 많은 플러그를 꽂아도 청구서는 날아오지 않는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